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SBS 8 뉴스 (문단 편집) === 1990~2000년대 === 밤 9시에 메인 뉴스를 편성하는 기존의 방송국과는 다르게 '''저녁 8시에 메인 뉴스를 편성'''하는 파격적인 시도를 하였다. 첫 방송 당시에는 개국특집 뉴스로 1시간 방송되었으며 다음 날부터 30분으로 고정되었다. 초창기에는 저녁 8시에 메인 뉴스를 30분 방송하고 밤 10시에 별도의 [[SBS 뉴스쇼]]를 편성하는 전략을 내세웠다가 이듬 해에 뉴스쇼를 8시 메인 뉴스에 흡수시켜 현재에 이르고 있다. 의 밤 9시 이동과 관련된 뒷이야기가 존재한다. 라디오 PD [[김용민(1974)|김용민]]의 말에 의하면, 김영삼 대통령은 저녁 [[메인 뉴스]]를 꾸준히 챙겨보기로 유명한 사람인데 잠시 김영삼의 눈을 피하자는 생각으로 9시로 옮겼다고 한다. 그 덕분에 KBS만 이득을 보았다. 그 동안 8 뉴스를 보던 시청층들이 대거 <[[8시 뉴스파노라마]]>를 시청해서 [[KBS 2TV]]의 시청률이 올랐기 때문이다. 그러나 가 시청률면에서 굴욕을 당해 결국 저녁 8시로 되돌아왔다. 이 시기부터 '한시간 빠른 뉴스'로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는데 8시 대의 시간대로 다시 회귀한 당시 TV 광고까지 내보내며 적극적으로 홍보했다. 이 때까지 시청률이 잘 나오던 <8시 뉴스파노라마>는 SBS 메인 뉴스의 8시 편성 복귀 이후 시청률에서 역전당했다. [[SBS]]가 지상파 3사 중 유일한 민영방송이기 때문에 정부의 눈치를 다른 지상파 방송보다 덜 본다는 장점이 있으나 2010년경까지는 사실상 친정부 방송과 마찬가지였던 보도 논조 탓[* 이는 기존 SBS 인력들이 주로 KBS에서 넘어왔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. 김태욱 아나운서, 이영돈 PD 등이 이 시기에 넘어온 인력이다. 물론 SBS의 논조가 보수적인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SBS가 [[민주자유당]]에 의해 날치기로 탄생되었다는 점이 가장 컸고, 창립 취지부터 중도보수 노선에 중산층을 겨냥한 터라 그렇다. 특히 [[윤세영]] 태영건설 회장이 당시 최병렬 공보처 장관과의 친분(윤세영 회장이 최병렬 장관의 서울대학교 선배였다.)이 두터웠으니 당연히 논조에도 영향을 받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.(그래서였는지, 최병렬 장관의 아들인 최희준씨가 SBS에서 보도국 기자, SBS CNBC 보도본부장 생활을 하다가 TV조선 보도본부장으로 가기도 했다.) 물론 SBS의 논조는 TV조선이나 채널A에 비하면 대놓고 친정부식은 아니기는 했다.]도 있고 후발주자인지라 개국 첫 방송 이후 <[[KBS 뉴스 9]]>, <[[MBC 뉴스데스크]]>에 가려서 시청률을 따라잡지 못해 인지도가 떨어졌다.[* 그래서 [[KBS 2TV]]에 [[KBS 뉴스비전|경쟁 뉴스 프로그램]]을 편성했는데 시청률이 비등비등하거나 오히려 저조한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. 그러나 KBS 2TV의 메인 뉴스 프로그램이 명칭을 갈아치우거나 시간대를 옮기는 일이 워낙 잦았기 때문에 인지도가 낮아졌고 그 덕분에 결과적으로 SBS의 완승에 가깝다. 더군다나 KBS에서 2TV [[저녁 뉴스]] 프로그램의 위상이 떨어지는 편이었으니 말 다했다.] 게다가 강한 보수적 성향 때문에 진보 시청자에게는 늘 까였다. 뉴스 리포팅의 질 또한 두 방송에 비해 다소 딸리는 편[* 80년대식 타이포그래피를 1995년까지 뉴스에 그대로 썼고, 2000년 11월 로고 변경과 2004년 3월 사옥 이전 후에도 1990년대에나 쓸법한 견고딕체 등을 한참 후인 2006년 8월 13일까지 사용했다. [[https://news.sbs.co.kr/news/endPage.do?news_id=N1000153781&plink=THUMB&cooper=SBSNEWSPROGRAM|8월 13일 SBS 8시 뉴스]] [[https://news.sbs.co.kr/news/endPage.do?news_id=N1000154161&plink=THUMB&cooper=SBSNEWSPROGRAM|8월 14일 SBS 8시 뉴스]]]이었으며 가끔씩 터뜨리는 병크 기사[* "고유가 시대라서 좋은 점", "대통령의 양배추 김치 발언의 옹호."] 등으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. 다만 1993년 노태우 정권기 해군 인사비리 보도, 1996년 시화호 폐수 방류, 2000년 비무장지대 고엽제 살포 등 한국기자상이나 한국방송대상을 받은 [[https://n.news.naver.com/article/055/0000012271|보도도 있었다.]] 여하튼 위와 같은 이유로 [[1990년대]]부터 [[2000년대]]까지는 SBS 8 뉴스가 지상파 3사 중 3위에 속했다. 이유는 당시 SBS는 보수적 논조를 지속적으로 고수하고, 타 방송사의 뉴스 프로그램 진행자가 '''역대급'''이었기 때문이다.[* SBS가 사옥을 옮긴 2004년 3월을 기준으로 당시 라이벌 방송사 MBC는 [[엄기영]] 앵커와 [[김주하]] 앵커가, KBS는 [[홍기섭]] 앵커와 [[정세진]] 앵커가 맡고 있었다.] 이후 [[2010년대]]에 들어서는 MBC 파업과 KBS 뉴스의 신뢰성 하락으로 SBS 8 뉴스가 이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종종 1위를 하는 등 2000년대와는 꽤나 반전된 상황을 보였다. 하지만 그마저도 [[2020년대]]에 들어서는 SBS가 또 다시 KBS와 MBC에게 밀리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2000년대와 같은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. 1991년 12월 9일부터 2001년 10월 25일까지 4:3 [[아날로그]]로 제작했으며[* 다만, 개국 당시부터 디지털 영상으로 편집해왔음에도 디지털 TV 본방송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시청자들은 아날로그 영상으로만 방송을 볼 수밖에 없었다.], 2001년 10월 26일부터 2005년 4월 24일까지 4:3 [[SD]]로 제작하였다. 2005년 4월 25일부터 16:9 [[SD]] [[아나모픽]]과 4:3 [[SD]]로 병행 제작하였고, 2011년 8월 15일부로 16:9 [[HD]]로 완전 전환되었다.[* 2011년 8월 15일 이후 뉴스를 보면 HD로고가 붙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.] 또, [[SBS#s-2.1|SBS의 3세대 로고]]가 도입된 2000년 11월 14일부터 2005년 1월 25일까지는 뉴스 방영 중에 SBS글자와 함께 동그란 파란색 로고(일명 지혜의 눈)가 워터마크로 표시되었으며, 2005년 1월 26일부터 타 프로그램과 동일한 워터마크를 쓰고 있다. 다만 2010년 9월 29일 방영분까지 다시보기 서비스 시에는 마스터본을 쓰는 터라 워터마크가 빠져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